들어가며
여섯 번째 회사의 퇴사를 앞두고 있다. 삼 월에 복직한 뒤로 나름대로 대책을 고민하고 준비했었다. 나중에 마음이 흔들릴 때 다잡기 위해 그 과정을 여기에 적는다.
나는 왜 개발자를
나는 왜 개발자를 하려고 했을까? 무엇을 바랐던 걸까? 이제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현대 사회에서 개발자는, 십육 세기 유럽에서 대포 기술자가 누린 것과 유사한 인기를 누리는 것 같다. 반면에 출판 편집자는, 십구 세기 인도에서 면직물 기술자가 처한 것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것 같다. 값싼 물건이 내 기술의 결과물을 대체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목격하는 처지. 이 기술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예전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하리라는 예감. 그 밖에 부수적인 원인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 비전공자인 친구가 몇 달 먼저 교육 과정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둘째 급여가 많았다.(신입 초봉이 편집자 칠팔 년차 연봉과 비슷했다.)
첫 한 달은 무척 재미있었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이런 걸 만들 수 있어?'의 연속. 생활코딩에서 에이치티엠엘, 씨에스에스, 자바스크립트, 자바 강의를 들었다. 그다음에는 친구의 추천을 따라 노마드코더 강의를 들었다. 틈틈이 부트캠프(개발자 교육 과정의 통칭)도 계속 조사했다. 그러다 네이버 부스트캠프를 알았고 내게 꼭 알맞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삼십 대 후반에 신입으로 취업하려면, 이 정도 되는 이력을 갖춰야 할 것 같았다.
네이버 부스트캠프를 대비해 코딩테스트 공부를 시작했다. 프로그래머스 영 레벨 문제를 풀기 시작, 다섯 문제도 안 되어 좌절하고 강의를 찾았다. 라매개발자의 문제 풀이를 보고 문제를 풀었다. 십 일차 단계 전후로 풀이 영상을 보고 문제를 곧장 풀어도 풀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이때 단념했다. 그래, 나는 수학 머리가 없었지.
그렇다면 노무사를
이때 노무사라는 직업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랜 친구가 프리랜서처럼 일하고 안정적으로 일거리를 얻는 모습이 부러웠다. 이제 회사는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아. 그래서 노무사를 어떻게 준비하면서 좋을지 이삼 일 동안 정신없이 조사했다. 노무사 지망생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 합격 수기를 수십 편 읽고 신이 나서 시기별 준비 요령을 일일이 정리했다. 칠 월부터 팔 월까지를 마이너스 일 기로 정하고 이것 이것을 하자. 구 월부터는 영 기가 시작되니까 이런 저런 강의를 듣자 등등.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애인이 뼈를 때리고 머리를 때렸기 때문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공부가 재밌을 것 같다는 내 말에 애인은 대꾸했다. "지금이 가장 재밌을 때 아냐? 합격 수기만 읽으면 당연히 재밌는 거 아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 년, 운이 좋으면 일 년 동안 수험 생활을 무사히 해나갈 수 있을지 두려웠다. 심지어 어제는 창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 애인의 조언을 따라, 내 앞에 놓인 선택지가 무엇인지 장점과 단점을 따져보기로 했다.
선택지 | 장점 | 단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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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사 | 높은 임금, 자율성 | 불확실성, 이 년 소득 없음, 수험 생활의 고생 |
교정자(번역자) | 익숙함, 당장의 소득, 자율성 | 낮은 임금, 불안정성 |
창업 | 의미와 재미, 자율성 | 불안정성, 불확실성, 소득 없음의 가능성 |
편집자 | 익숙함 | 익숙한 노예 생활, 불확실성 |
나가며
이렇게 적고 보니 지금 나에게 각 선택지가 어떤 의미인지 대강 알겠다. 편집자로 계속 일한다는 선택지는 그저 익숙함일 뿐이고, 창업은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모두 모아 놓았다는 것. 첫째와 둘째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