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퇴사 회고

갈 길 잃은 소보로 2023. 6. 23. 10:42

들어가며

여섯 번째 회사의 퇴사를 앞두고 있다. 삼 월에 복직한 뒤로 나름대로 대책을 고민하고 준비했었다. 나중에 마음이 흔들릴 때 다잡기 위해 그 과정을 여기에 적는다.

나는 왜 개발자를

나는 왜 개발자를 하려고 했을까? 무엇을 바랐던 걸까? 이제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현대 사회에서 개발자는, 십육 세기 유럽에서 대포 기술자가 누린 것과 유사한 인기를 누리는 것 같다. 반면에 출판 편집자는, 십구 세기 인도에서 면직물 기술자가 처한 것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것 같다. 값싼 물건이 내 기술의 결과물을 대체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목격하는 처지. 이 기술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예전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하리라는 예감. 그 밖에 부수적인 원인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 비전공자인 친구가 몇 달 먼저 교육 과정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둘째 급여가 많았다.(신입 초봉이 편집자 칠팔 년차 연봉과 비슷했다.)
첫 한 달은 무척 재미있었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이런 걸 만들 수 있어?'의 연속. 생활코딩에서 에이치티엠엘, 씨에스에스, 자바스크립트, 자바 강의를 들었다. 그다음에는 친구의 추천을 따라 노마드코더 강의를 들었다. 틈틈이 부트캠프(개발자 교육 과정의 통칭)도 계속 조사했다. 그러다 네이버 부스트캠프를 알았고 내게 꼭 알맞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삼십 대 후반에 신입으로 취업하려면, 이 정도 되는 이력을 갖춰야 할 것 같았다.
네이버 부스트캠프를 대비해 코딩테스트 공부를 시작했다. 프로그래머스 영 레벨 문제를 풀기 시작, 다섯 문제도 안 되어 좌절하고 강의를 찾았다. 라매개발자의 문제 풀이를 보고 문제를 풀었다. 십 일차 단계 전후로 풀이 영상을 보고 문제를 곧장 풀어도 풀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이때 단념했다. 그래, 나는 수학 머리가 없었지.

그렇다면 노무사를

이때 노무사라는 직업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랜 친구가 프리랜서처럼 일하고 안정적으로 일거리를 얻는 모습이 부러웠다. 이제 회사는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아. 그래서 노무사를 어떻게 준비하면서 좋을지 이삼 일 동안 정신없이 조사했다. 노무사 지망생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 합격 수기를 수십 편 읽고 신이 나서 시기별 준비 요령을 일일이 정리했다. 칠 월부터 팔 월까지를 마이너스 일 기로 정하고 이것 이것을 하자. 구 월부터는 영 기가 시작되니까 이런 저런 강의를 듣자 등등.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애인이 뼈를 때리고 머리를 때렸기 때문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공부가 재밌을 것 같다는 내 말에 애인은 대꾸했다. "지금이 가장 재밌을 때 아냐? 합격 수기만 읽으면 당연히 재밌는 거 아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 년, 운이 좋으면 일 년 동안 수험 생활을 무사히 해나갈 수 있을지 두려웠다. 심지어 어제는 창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 애인의 조언을 따라, 내 앞에 놓인 선택지가 무엇인지 장점과 단점을 따져보기로 했다.

 

선택지 장점 단점
노무사 높은 임금, 자율성 불확실성, 이 년 소득 없음, 수험 생활의 고생
교정자(번역자) 익숙함, 당장의 소득, 자율성 낮은 임금, 불안정성
창업 의미와 재미, 자율성 불안정성, 불확실성, 소득 없음의 가능성
편집자 익숙함 익숙한 노예 생활, 불확실성

나가며

이렇게 적고 보니 지금 나에게 각 선택지가 어떤 의미인지 대강 알겠다. 편집자로 계속 일한다는 선택지는 그저 익숙함일 뿐이고, 창업은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모두 모아 놓았다는 것. 첫째와 둘째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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